연방정부의 재정규모는 제2차대전을 경과하면서 크게 증가하여 1939년도의 88억 달러가 1945년도에는 927억 달러의 방대한 규모로 늘어났다. 그러나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90년에는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공화국내 수입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국민의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가장 보편적인 지표(指標)로서 1인당 국민총생산을 1995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미국은 2만 7,551달러(1987년은 1만 8,413달러)로서 스위스, 일본, 독일,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미국은 산업구조가 극히 고도화하여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 부문이 가장 큰 반면 농림수산업과 광업 등 1차산업의 비중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그후 1946∼50년도에는 400억 달러대로 축소되었으나 한국동란(1950∼53) 이후 군사비 및 대외원조의 증가로 다시 급속히 팽창함으로써 1962년도에도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또한, 80년대에 들어서도 미국 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와 산업구조 조정상의 제조업부문 공동화현상에 기인하여 미국의 무역적자는 1980년 195억 4천만 달러로 되었다가 1987년 사상최대의 1,521억 1천9백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한편 최근에는 에너지산업의 중점개발과 도시재개발 등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주요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제개혁 및 무역관리를 통해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경제는 소위 '혼합경제'로서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대규모의 경제활동을 통해 민간경제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WTO체제하에서 무역환경위원회를 상설기구화하여 보다 강력한 국제규범의 추진을 제안하여 왔고, 국내적으로도 소위 '그린 301조'와 같은 일방조치의 입법이 논의되기도 할 정도로 환경문제에 대하여 가장 공격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전후에는 트루먼독트린에 의한 마셜플랜과 1951년의 상호안전보장법 등에 따라 자유세계국가에 다액의 자금원조를 제공하고, 이 자금으로 미국상품을 수입하는 소위 원조수출이 활기를 띠었다. 이 제도는 일정 계약기간 동안 국가가 기업을 임대해 주고 그 대신 기업주는 임대료를 납부하는 제도이다.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제창된 공정무역주의는 1993년 1월에 등장한 민주당의 클린턴행정부에 의하여 목표지향적 관리무역주의(Goal Oriented Managed Trade Coverage)로 그 방향이 선회되면서 무역상대국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의 강도가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이런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의지로써 미국과 일본간의 포괄무역협의(Trade Framework Talks;TFT)와 한국과 미국간의 경제협력대화(Dialogue for Economic Cooperation;DEG)를 설정한 바 있다. 따라서 국제정치질서의 구조변화와 함께 세계경제 또한 그동안 축적되어 온 각국의 경제력 변화, 사회주의 국가들의 시장경제원리의 도입,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 새로운 국제무역질서로의 개편 움직임 등으로 미국의 새로운 위상과 과제가 요구되게 되었다. 미국의 세입구성을 보면 법인소득세는 기업투자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는 이유로 비중이 크게 낮아지는 반면 사회보장세는 크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1973년의 석유파동(oil shock) 이후는 석유가격의 인상에 따라 수입금액이 대폭 증가하는 등의 이유로 무역수지 적자가 1976년에 93억 달러, 그리고 1977년에는 312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수입의 경우는 1946년 51억 달러, 1961년에 one hundred forty five억 달러로서 무역수지가 계속 흑자를 유지하였다. 한편 미국의 무역규모를 살펴보면 먼저 수출의 경우 1946년의 117억 달러에서 fifteen년 후인 1961년에는 two hundred억 달러로 늘어났으며 그후 1971년에는 433억 달러, 그리고 1988년에는 three,216억 달러로 급증하였고, 1993년에는 four,648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또한 수출의존도도 one차 마르크 절상 후인 61∼65년에는 15.2%로 낮았으나 그 후 66∼70년 17.9%, 71∼seventy six년 twenty.5%로 높아졌다. 그런데 미국의 달러화는 국내통화로서뿐만 아니라 국제기축통화로서 그 역할이 중대하였다. 미국의 외국무역은 2차대전중 무기대여법에 의거, 연합국들에게 무기와 식료품 등을 공급하게 됨을 계기로 수출이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하였다.年代 美國-貿易政策1990년대의 국제무역환경은 급격히 변화하였으며, 특히 일본과 서구제국의 부상 그리고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빠른 경제성장 등으로 국제무역질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구사하고 있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의 경향은 수퍼 301조의 부활, 상호주의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미국내에서의 금융업 영업행위 제한을 목적으로 하는 입법의 추진 및 국제공정경쟁법의 제정추진 등의 움직임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외국의 부당한 무역관행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당해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에 대한 수입관세 부과, 당해국 기업의 미국내 활동제한, 혹은 기타 보복조치를 통하여 통상대표부는 미국이 입은 피해액과 동등한 정도의 보복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의 금융사정을 보면, 기업금융의 경우 1986년 이후 5차례의 공정할인율 인하(5.0%→2.five%)로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졌으며 주식 등 자유금리상품의 확대로 인해 자금운용 이익도 개선되고 있다. Tremendous 301條-Unique 301條1988통상법에서 제정된 수퍼 301조와 스페셜 301조는 통상대표부로 하여금 무역상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의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구체적 시한을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또한 협상대상국의 시정노력이 불성실한 것으로 판정될 경우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U 통상정책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수입규제조치와 산업별 통상정책 등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1993년 기준으로 미국의 산업별 취업구조를 보면 농림· 미국의 화폐제도는 종전의 금은 복본위제(金銀複本位制)에서 1900년 이후 금본위제로 이행하였다가 1934년 금준비법의 제정으로 금화의 주조 및 유통이 금지되어 다시 제한적인 금은 본위제로 바뀌었다. 이러한 제조업 부문의 감소는 탈 산업화 및 제조업 설비투자 부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태지역 비중이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요 공산품으로는 항공기, 기계, 철강, 자동차, 컴퓨터 등이 있으나 제조업은 50년대와 sixty년대의 고도성장기에는 국내총생산 중 thirty%의 비중을 점하였으나 이후 미국경제의 성숙기 진입과 함께 그 비중이 점차 감소하여 1987년에는 19%를 차지하였다. 그 후 60년대를 거치면서는 서구 제국과 일본의 경제부흥에 따라 무역량이 완만하나마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70년대를 전후하여서는 세계무역의 자유화 추세로 급속히 늘어났다. EC 등으로부터 섬유류의 수입규제를 받는 입장에 있었고, 섬유산업의 구조개편으로 개도국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었으며, 또한 자유무역체제가 유지됨으로써 이미 국제 경쟁력을 확립한 각 분야에서 일본의 우위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201조에 의한 제소자의 법률비용 부담이 기타 적용 가능한 구제조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또한, 세계무역구조에 있어 국가간 무역 불균형 현상의 심화와 함께 특정국에 무역적자가 편중되어, 미의회의 보호무역주의 입법활동 강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일본의 경쟁력이 향상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한 여타 국가의 개방화 요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였고, 그 외에도 경제구조의 합리화와 고도화, 그리고 해외시장의 보다 광범위한 확충을 위해서 개방체제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무역 및 외환자유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였다.